사찰

지리산 의신사 절터를 잦아간다 (2023.5.30 )

화개장터 (jangtor) 2023. 5. 30. 22:11

지리산 불일폭포 내원골 소은암 :

김일손의 지리산 천왕봉 일주 산행기에 16일동안 크고 작은 암자와 계곡을 다녀보고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불일폭포 불일암 하나였다고 한다.  아래 글은 김일손의 두류산 산행기다. 의신사에는 승려 30명이 정진하고 있고 신흥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계곡의 경치에 매혹되어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있었다 한다.

 

등구(登龜)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전후 16일이 걸렸는데, 곳마다 천암(千巖)이 다투어 뻗쳐나고 만 골짝의 물이 어울려 흘러 기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은 불일암 하나였다. 또 학의 이야기를 듣고 이미수가 찾던 곳이 거기가 아닌가 의심했으나 골짝이 워낙 높고 동떨어져서 원숭이가 아니면 갈 수가 없으니, 처자(妻子)와 우독(牛犢)이 용납할 곳이 없다. 엄천(嚴川)이나 단속(斷俗)은 모두 불자(佛者) 장소가 되어버리고 청학동마저 끝내 찾지 못하니 어찌 하랴. 백욱이 말하기를, “솔과 대가 둘 다 아름답지만 차군(此君 대의 이칭)만 같지 못하고, 바람과 달이 둘 다 맑지만 중천(中天)에 온 달 그림자를 대하는 기경(奇景)만 같지 못하고, 산과 물이 모두 인자(仁者)  지자(智者)의 즐기는 것이지만, 공자께서 칭찬하신 물이여 물이여.만 같지 못하니, 명일에는 장차 그대와 더불어 악양성(岳陽城)을 나가서 대호(大湖)의 물결을 구경하도록 하자.” 하므로 나도 그렇게 하자.” 하였다.

 

 

 

하동군 화개면 의신사 절터를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눈만뜨면 지리산 의신사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의신마을 어디쯤인지 의문을 가지고 지내왔다. 지리산 절간을 소개되는 서적이많이 나왔다. 의신사 신흥사 칠불사 쌍계사 이야기가 있다.

막연하게 의신마을 뒷편에 있다고한다. 원주민 수는 적어지고 외지인들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의신마을 부도를 찾아 산을 힘들게   올랐다 .마을 주민의 설명만 듣고 ,지팡이까지 얻어 올랐으나 혜매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가는 길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방향을 가르킨다. 고향이 의신이라 한다. 그리고 화개중학교 19회라고 하고 그때 기술선생인 나를 알아본다. 어릴때 의신사 철터에서 자주 놀러 갔다고 해 찾아갔다. 의신사 부도는 다음에 찾기로 하고 철터로갔다. 옛날에는 석물이 있었는데  물을 받아 모우는 크다란 네모진 수구만 남아 있다.

 

2023.5.31일 3일째 

확실한 위치 파확 없시 의신으로 가서 차를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해 놓고 원통암가는 길을 찾아 가는중에 ,지리산 산악인 집에 제자를 만나 위치를 설명을 듣고는  , 자신이 없었다. 고맞게 제자의 안내를 받아 현장에 갔다. 3번째 다.

입구까지 3번째다. . 지금은 의신사 절터는 개인소유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찾아 봐야 하겠다.

 

의신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향화를 피었으나 19세기에 폐사되었습니다. 폐사의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었고, 당취라는 반체제 불교 승려들의 비밀결사의 본부가 있었기 때문에 왕조의 탄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의신사에서 발견된 부도와 석불, 철불 등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거나 도난당했습니다. 의신사의 역사는 불교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bing 에서)

 

1560(영종15)에 서산(西山)대사가 쓴 <벽송 행적> 碧宋堂 行蹟>에 보인다. 벽송당 지엄(智嚴 1464 - 1534) 대사가 입적하자 제자들이 의신사의 남쪽(義神之南麓)에 부도(石鐘)을 모셨다는 기록이다

여기서 가장주목 할 것은 추강선생의 기록이다. 모든 사람이 의신은 사찰의 이름 , 즉 의신사에서 유래했다고 알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 의신사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추강선생의 기록을 보면 의신사 유래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의신암(義神庵)은 긴 대들의 대밭이 끝나는 곳에 서쭉을 행하여 (西面)이 있었다. 감나무가 대밭속에 홍시(紅實)가 했볕을 받아 투명하게 보였다.

봄풀로 엮은 초막변소가 역시 대밭속에 있는데 근일(近日)에 본것중에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치였다.

법당에는 금부처 한 분을 모셔 놓았고 서쪽방()에는스님의 상(僧像)을 한 분 모셔두고 있었다. (추강)가 어떤 분이나 물었더니, 스님이 말하기를 이 분은 의신조사(義神祖師)입니다.

이 곳에서 도()를 닦는 분입니다.....>

추강선생의 계속되는 글의 내용을 보면 의신은 이 곳에서 도를 닦아 일가(一家)를 이룬 의신조사조사라는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 했음을 알 수 있다. < 화개면지 상권 350페이지에서 >

절터 기와 

어덕에 바닥에 너부러저있는 돌을 이용해 어덕을 만들었다.

옛날에 대나무 홉대로 물을 받았다.

언덕에 동백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백나무 

절터 전경 

의신사 절터 입구, 감나무
화개중학교 19회 정명길 제자

 

법해당(法海堂):규모가 상당히 큰 석종형 부도. 

부도 크기 내키 크기( 160센치)0

법해당(法海堂)

실개천 나무다리를 건너간다.

 

2010. 3.25 카페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