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

1950년 7월25일 화개장터 그때

화개장터 (jangtor) 2016. 2. 1. 16:17

1950년 화개장터 나와라!:     1950년 7월25 오전 6시, 전라는도 구례 구례방면 으로부터 19번 국도를 따라 북한 인민군 정예 6사단 선봉대대가 화개원탑에 처들어와 화개면사무소 직원 한명을 학살했다. 주민을 동원해  국도를 끊고 있던 중에 구례쪽에서 우리 국군복으로 위장한 북한 장교가 작업을 중단 시키면서 길을 반만 끊어라고 하면서 우리군이 내려온다고 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복장을한 대 부대가 신작로길을 가득메우고 밀려내려왔다. 우리측은 청년단원과 경찰관 30명과 응급배치된 학도병들로 화개지서 뒷편 고지에 진을 치고 적의 진로를 차단 하려고 했으나 접전 10여분 만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목넘어에서(우리쪽이 수비하고있는 고지가 바로 보이는 지점) 직사포로 아군 고지에 쏘았다. 경찰관 3명과 학도병 17명이 전사했다.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살아 남은 병력은 지리산을 거쳐 산청쪽으로 후퇴 해버렸다. 아침에  집집마다 분산되어 아침을 먹고 있을 때라 무참히 당했다. 학도병은 전라남북도 에서 지원된 어린 학생들인데 총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 희생자 중  대부분이 학생들이였다.꽃다운 청춘이 비명속에 산화했다.   그 당시  이부락민에게 ,이미 세상을 달리한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없고 슬프고 답답하다.   그 당시 난리 통에  유족이 시신을 찾아가고 남아 있는 시신을  가까이에 구덕이를 파고 묻었다고한다.  수 세월이 흐르고 난 후 살아남은 학도병들이 뜻을 모아 충혼탑을 만들고 기일에 제사를 지내왔다.  군(軍)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지금도 섬진강 남도대교가 보이는 고지(高地)에는 그때의 처참한 비극 젊은 영혼들이 떠도는 것같다. 그때 그지역은 지금도 방치된채 잡초만 무성하다. 관광상품만 개발하지말고 역사적 비극  개발해 우리 후손들에게 살아있는 배움의 장으로 했으면 한다.

20년전에 대만을 갔는데, 군부대가 있던 자리 75만평에 장개석 기념관을 만들고 누구든지 보고 배울수 있게 무료개방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이만한 국민교육을 시키려면 그 수십배 비용이 든다고 설명한다.        

                                                                  하동군지(상) 263페이지 :공산군 하동점령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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