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봉옹(83세) 2010년 8월 14일 별세. 아래 이야기는 생전에 했던이야기를 정리한것입니다. 명복을 뵙니다.
청파는 스님이 아니다. 화개의 차생활을 이어주는 역활로 아호 청파(淸波)는 20년간 한점의 혈육도 없이 (나중 미국에 거주하는 두딸이있씀)홀로 차밭을 가꾸던 쌍계사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말년에는 쌍계사에 폐를너무 끼처 석문동네에서 끼니를 해결했다고한다.
선생은 해방전 중국에서 생활하며 차를 마시고 만들었다고 한다(중국에서 독림운동을 했다는 미확인 이야기도있다). 해방후 귀국해서 쌍계사에서 오랬동안 차밭을 가꾸고 차를 즐겼다고한다. 쌍계사 뒷편 내원골 수은암자 주위에 차씨를 뿌려 차를 길렸지만 자금이 없어 최병태 아버님에 팔았다고 한다(소은암 주위 땅매매 계약서에 조병권(건)으로 되어있음 ) 또 틈틈히 아이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쳤다고한다. 작설차, 죽로차, 오룡차 이름을 지었다고한다. 청파 조병곤 잭살 할아버지의 시한수
"화개 작설차는 당나라 차종자에서 꽃피었지만 망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재목이 되리라 대대로 피어나는 차잎은 오래도록 재산이 되어 그 재원이 나라의 어려움을 도우리"
한시는 이광섭(화개장터 거주)씨 보관하고 있다고한다. 또 차를 만들어 이승만 대통령께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파 선생의 기일은 음력 3월18일 무렵이다. 이때는 화개천지는 우전차를 따는 시기로 차맛이 제일 좋은때다. 화개제다 사장 홍소술씨도 살아계실때 쌍계사에서 발효차차를 만들어 드시는 청파를 만났다고한다. 청파선생은 1960년 타계하셨다. 선생의 묘지는 차시배지로 콘도를 지으면서 파냈다고한다.그당시 분묘 이장비용이 60만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마땅한 땅을 못 구해 화장을 해 뼈는 물에 버렸다고한다. l 그러나 콘도는 부도가 나 완공도 못하고 방치하고있다. 혈육한점없이 홀로 화개 차를 좋아 하시다가 쌍계사 절방에서 생을마감한 차의 외로운 선구자다. 청파선생님은 화개차문화의 선구자로 차에 관심있는 알리고자 한다. 하동군 문헌에서 간추려 올립니다. 사후에 미국에 거주하는 딸이 왔다고한다. 생존해 있는 석문 박학봉 활아버지 오랬동안 쌍계사 재무스님을 하면서 별세할때까지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아침 예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참석을 않해 절방에 가보라고 해서 가보니 쌀자루를 벼고 죽었다고 했다.. 여기에 화개의 차의역사 블로그를 한번 읽어보세요. http://blog.naver.com/samhang/90033726941
박학봉(81세)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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