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제적봉 평화전망대 (2013.11.20)
[강화제적봉 평화전망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이다. 어떤 곳인지 궁금함을 가지고 전망대 2층으로 올라 갔다. 주위에 군인들의 초소와 철망이 시야에 들어 온다.
유리창을 넘어 들어오는 북한땅, 많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에와서 인터넷을 디저보니 이곳이 "애기봉"이란 곳이다. 그 슬픈 이야기가 있구나. 애기봉 비문이 있는 것을 모르고 온 것이 정말 아쉽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곳에 애기봉(144m) 이 자리하고 있다.
"애기봉의 유래"
서기 1936년 조선 인조 14년 청나라 태종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범한 병자호란시
평양감사는 가장 사랑하는 애첩"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바로 개풍군에서 감사하는 청나라 오랑케의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첩 애기만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 조강리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봉우리에 올라와 북녘하늘을 바라바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어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이 쑥갓머리봉우리(154고지)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따라 시신을 매장해 주었다고 한다.
1966년 10월 7일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시 "애기"의 사연을 들으시고 "애기"의 한(恨)은
강하나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과 같다고 하시면서
이 봉우리를 "애기봉"이라고 명명하시고 친필 휘호로써 비석을 세워다
그후 김종필민주공화당으장시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때 지금의 이름으로 친필을 내렸다.
전망대 2층에서 유리를 통해 바라본 북녘땅
직접 파노라마로 찍은 북녘땅을 보면서 [애기봉]의 전설의 주인공 처럼 언제나 갈수있을가 애절하게 기다려 진다.
위장가옥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여미며
그이름 다시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몇해 오늘에야 찾을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금강산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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