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西山)대사가 '내은적암' 을 중수하고 '청허원(淸虛院)이라 당호를 짓고 흥겨워 지은 시이다. 서산대사는 1560년(41세)때 처음 출가했던 그리운 지리산 화개동을 찾는다. 신라때부터 있었던 내은적암이 거의 폐허가되어 있었다. 직접 모연문(慕緣文)을 짓고 중창하였다. 대사는 원숙한 나이에 3년을 이곳에 살면서 많은 저술을 하였다. 대표적인 역작 '선과귀감'(禪家龜鑑)도 여기서 완성하였다. 의신동이 15세 소년 운학(雲鶴)이 출가하여 서산. 휴정(休靜)이 된곳이라면, 신흥동의 내은적암(청허원)은 서산대사 의 사상이 완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왕성분교(화개초등분교)있다. 주추돌을 보면 3칸건물이고 3줄의 주추돌이 온전히 남아 있다. 앞쪽의 추추돌은 원형으로 3단내지 2단으로 깎았고 뒤쪽 2줄은 4각형의 추추돌이다. 2010년 1월 23일 좋은 차를 만드는 소소다원 사장님과 동행.
대사는 내은적암의 빼어난 경관과 전망을 사랑했다. 세이암(洗耳巖)을 휘돌아 흐르는 시내, 북쪽의 지리산 연봉들과 남쪽의 툭터진 화개동천의 아름다움, 서산대사가 청허원 이라고 명명한 내은적암 터에 가면 3번 놀게된다. 첫번째는 아름다운경관과 빼어난 전망에 놀라게된다.
신흥사지 뒷편의 야생차밭이 녹색의 융단처럼 펼처진 곳의 대밭속에 있다. 둘째는 청원의 규모가 작은 것에 놀라게 된다. 초가삼간크기로 보통 7평 정도로 보는데 청원의면적이 7.27평(24제곰미터)에 불과하다. 세째는 서산대사가 청허원을 중창(1560년)한지 거의 5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3줄 12개의 주추돌이 완벽하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아래사진은 내은적암에서 내려다본 화개동천. 신흥초등학교자리가 신흥사지터.
원형주추돌이 3층으로 되어있고 넘무나 깨끗하게 남아있다. 주위에 기와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서산대사가 32세의 나이에 당시 불가의 최고직이었던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직책을 사임하고 명산제찰을 편류하다가 다시 되돌아온 곳이 화개동의 신흥사였다. 불후의 명작이 된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신흥사 산내 암자였던 ‘내은적암(內隱寂庵)’에서 완성되었다. 내은적암터는 신흥마을의 왕성분교 뒷산 중턱에 있다. 서산대사는 내은적암을 중수하고 당호를 청허원(靑虛院)이라 짓고 스스로 청허라고 불렀다. 물러나 내은적암에 머무른다고 해서 호를 퇴은(退隱)이라 쓰기도 했단다.
내은적암 터 , 뒷줄 주추돌이 보인다.
좋은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소소다원 사장님과 동행
애래쪽은 지리산 계곡을 휘몰아 세이암 바위를 돌고 흐르는 내가 보인다.
앞쪽의 원형 주추돌이 500년전 그대로 남아있다.
내은적암터를 자연돌로 석축한것이 지형이 생긴 대로 따랐다. 석축아래는 차나무(명원다원) 재생하고있다.
내은적(內隱寂)
십년동안 떠돌던 손이
돌아오니 백발만 더 더했구나.
나무 대(竹)를 다 베었거니
어느 곳에 향엄(香嚴)을 찾을고.
(전등록에 향엄선사가 돌로 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았다 한다.)
서산대사 유적 복원.정비사업 (하동군)110쪽 예서
소나무 뼈를 쪼개어 들보를 만들고,
푸른 구름을 베어 지붕을 만들고,
맑은 바람을 끌어 벽을 만들고,
밝은 달을 걸어 등을 삼는다.
천지가 열리기 전에 이 암자는 이미 이루어 졌고,
천지가 이미 무너졌어도 이 암자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서산>대사가 내은 적암을 짓고 올린 [내은적암 청허당 상량문]에 기록된 내용이다. --지리99 꼭대님 글 --
785 頭流山 內隱寂庵 두류산 내은적암
休靜 서산대사 1520~1604
有僧五六輩 유승오육배 도반 대여섯이
築室吾庵前 축실오암전 내은암에 집을 지었네
晨鐘卽同起 신종즉동기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暮鼓卽同眠 모고즉동면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共汲一澗月 공급일간월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煮茶分靑烟 자다분청연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日日論何事 일일론하사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念佛及參禪 염불급참선 참선과 염불일세
789 內隱寂 내은적
休靜 서산대사 1520~1604
頭流有一庵 두류유일암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庵名內隱寂 암명내은적 암자의 이름은 내은적이라
山深水亦深 산심수역심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遊客難尋迹 유객난심적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東西各有臺 동서객유대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物窄心不窄 물착심불착 만물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淸虛一主人 청허일주인 淸虛라는 한 주인은
天地爲幕席 천지위막석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夏日愛松風 하일수송풍 여름 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臥看雲靑白 와간운청백 구름은 靑白으로 조화를 부리누나
(서산대사의 시모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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