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악산 남장사 보광전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502 남장사 보광전 목탱화 : 목각탱은 조선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규격은 225 x 236 cm 이다. 주존인 철조(鐵造)비로자나불 뒷벽의 후불탱으로 모셔저있는 이 목각탱은 아미타 극릭 회상의 도상을 나무로 조각해 금분을 불상의 뒷벽은 종이나 비단에 그린 탱화가 아닌 조각 수법 등이 대상사(大乘寺)의 목각탱과 매우 유사하다. (대승사:경북 문경시 산북면 면전두리)
노악산 남장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7년에 진감선사 혜소스님(경남 하동 화개면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에 남장사가 있다 )께서 개창하시고 고려 면종 16년(1186년) 각원화상이 에 현위치에 옮겨짓고 남창사로 개명 하였다한다. 원래 이름은 장백사 였으나 개명 하였다한다.특히 어 산(범패)불교음악의 최초 전래 전래지이며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과 전단향나무로 조성해 봉안한후 불목각탱은 국내에서 우수한 걸작으로 불교미술의 대표작이라한다.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 비문중에서:
이에 태화(太和) 4년 (830, 흥덕왕(興德王) 5년)에 귀국하여 불교의 최상승(最上乘) 도리로 우리나라를 비추었다. 흥덕대왕이 편지를 보내 환영하고 위로하며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전날에 이미 돌아왔고 , 스님께서 이어 돌아오시니 두 보살(菩薩)이 되었도다. 옛적에는 흑의 이걸( 黑依 二傑)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 이제는 누더기 입은 뛰어난 스님을 친견하니 하늘에까지 이름이 가득한 자비스런 위엄이 있어 온 나라가 기쁘게 기대는 구나. 내가 장차 동쪽 계림 땅에 상서로운 곳을 만들겠다. "고 하였다.
비로소 상주의 노악산 장백산(露嶽山 長栢山 :지금 상주의 남장사)에서 주석(柱錫)하였다. 의원의 문에 병자가 많듯이 오는 자가 구름과 같아, 방장(方丈)은 비록 넓었으나 형편이 어려워 드디어 보행으로 진주의 지리산에 이르렀다. 호랑이 몇 마리가 포효하면서 앞을 인도하여 위태로운 곳을 피해 평탄한 곳으로 가게 하니 앞에서 이끄는 기병(騎兵)과 다름이 없었다. 따라가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 집에서 기르는 개와 같았다. 그러한 즉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인도승려)이 영산(靈山)에서 여름 결제를 할 때 맹수가 길을 인도하여 깊이 산속의 굴로 들어가 석가모니의 입상을 보았다는 사적(事跡)과 꼭 같았다. 또 저 축담유 (竺曇猷:晉나라때 강거국에서 온스님) 가 조는 호랑이의 머리를 쳐서 경을 듣게 하였는데, 또한 그것만이 오로지 승사(僧史)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에 화개곡(花開谷)의 故 삼법화상(參法和尙)이 남긴 절터에 절을 지으니 마치 화성(化域)처럼 장엄하게 이루어졌다.
주석(駐錫):승려가 포교를 하기 위하여 어떤 지역에 한때 머무르는 일
주석(柱錫) ?